
일설에 의하면 에도의 거상 기노쿠니야 분자에몬의 부지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. 그후 쿄우호년간(1716∼1736)에 시모후사노구니, 세키야도의 성주 구제야마토노가미의 교외 별장이 되어 정원으로써의 기본적인 틀이 잡히게 되었습니다.
메이지11(1878)년에 이와사키 야타로우가 이 저택 부지를 사원의 위안과 귀빈을 초대하기 위한 장소로 조성하고자 계획하여 메이지13(1880)년에 ‘후카가와 친목원’을 개원하였습니다. 그후에도 정원의 조성공사가 진행되어 스미다강의 물을 끌어들여 온 다이센스이를 비롯하여 석가산, 카레산스이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수집해 온 명석을 주위에 배치한 메이지의 정원을 대표하는 ‘회유식임천정원’으로 완성되었습니다. 쇼와54(1979)년 3월 31일에는 도쿄도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.
또한, 이 정원에는 영국인 죠사이어 콘돌이 설계한 붉은 벽돌의 츄다식으로 지어진 서양관이 있었으나 다이쇼12(1923)년의 관동대지진의 화재로 인해 손실되었습니다.





